농업인과 함께하는 득량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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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부락별유래현황

삼정리 1구

쇠실

삼정리는 보성군 송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심송리, 신전리, 국치리, 성재리, 서재리를 병합하여 삼정리라 해서 득량면에 편입되었다.
쇠실 마을은 조선초기에 촌락이 형성되어 조선중기까지는 백씨, 강씨등이 거주하였으나 인조반군 금천면(옛 나주소재지)에서 이주하여 지금까지 안동김씨가 집성을 이루고 있다.
마을의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우측 산 어귀에 쇠를 부리는 곳(일명:대장간)이 있어 이곳을 쇠꽃이라 하여 쇠실(금곡)이라 하였다 한다.

특정지명

  • 기러기재 : 삼정리에서 미력 초당리로 넘어가는 고개
  • 느묵재 : 쇠실 북쪽에서 겸백 용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 자래등 : 기러기재 동쪽에 있는 등성이

득량면 삼정 2구

신전

신전마을은 1569년 조선조 선조2년 진주정씨 진사 권일의 자손이 도천면 마동리에서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지명은 마을 주위 전체가 율목과 숲이 많아 섶신(薪)자와 밭전(田)자를 따서 ‘섶밭몰’이라 불려오다가 일제시대부터 신전으로 불려오고 있다.

특정지명

  • 국재 : 성재동 남서쪽에서 마천리로 가는 고개 절골: 섶밭몰 서쪽에 있는 골자기 함지골: 개미골 서쪽에 있는 골자기
  • 서당골 : 국재 서편 서당까금이 있는데 조선중기에 전주 이씨가 서당을 건립하여 현재 서당터만 남아 있다.

득량면 삼정 3구

성재

성재마을은 1822년 조선순조 22년에 청주한씨 한춘삼과 김해김씨인 김명선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어느 노승께서 이 마을에서 백목상을 하면 재물을 이룬다고 하여 성재동이라 하였으나 한일합방 후 마을 이름을 성재동이라 쓰여지고 있다.

특정지명

  • 성적골 : 가는골 북동쪽에 있는 골자기
  • 부장골 : 성적골 서쪽에 있는 골자기, 부장을 지낸 장수의 묘가 있음

서재

서재 마을은 1826년경에 진주 강씨가 정착하여 촌락을 형성 하였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본 마을 위치가 산자 수려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맑기 때문에 이곳에 어느 선비가 후진양성을 위하여 서재를 짓고 수년간 이어 왔다고 하며 그 후 마을 이름을 서재라 불려지고 있다.
본 마을은 한국전력공사 보성강 수력 발전소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연혁은 다음과 같다.

  • 1936년 1월~1937년 2월: 수압수로를 포함한 발전소 건설
  • 1937년 3월 22일: 보성강 발전소 준공 발전 개시
  • 1988년 10월~1990년 5월: 설비교체 및 증설공사(발전용량 4,500Kw로 증설)

특정지명

  • 돼지골 : 삼재 서북쪽에 있는 골자기로 돼지 형국이다.
  • 삼재물통 : 1937년 보성강을 막아 겸백저수지로 부터 터널을 뚫어 저수탱크를 만들어 놓았으며 이를 속칭하여 삼재물통이라 한다.

득량면 송곡 1구

가신

송곡리는 한때 보성군 송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패합에 따라 가신리, 기동리. 박곡리, 증흥리를 병합하여 송곡면 사무소가 있었으므로 송곡리라 해서 득량면에 편입 되었다. 가신마을은 1543년경에 제주양씨가 처음 터를 잡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
마을 지명은 마을 뒷산의 국사봉이 마을로 뻗어내려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국으로 전설에 의하면 가신동 사람들은 거짓을 모르고 이웃끼리 상부상조를 잘한다고 하여 이웃주민들이 이 마을을 가신동이라 하였다 한다.

텃골(기동)

기동 마을은 조선 초 1543년에 창녕 조씨와 제주양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마을의 지명은 옛부터 송곡면 행정의 중심지로 묘 자리가 좋은 장소라 하여 기동이라 하였다고 전하여 진다.

특정지명

  • 왕사골 : 텃골 동남쪽에 있는 들

군머리

군두마을은 국도를 중심으로 1930년경에 최초로 밀양 박씨가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은 지명은 마을 뒷산이 장군대좌 형국으로 임진왜란 당시 아군의 진지와 작전본부로 사용했던 장소이며 아군의 우두머리가 이곳에 있었다 하여 군두라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당시 아군의 진지 선두지점이라 하여 군두라 전해지고 있으며 최대성 장군의 정충문과 신도비가 있다.

특정지명

  • 구실멧등 : 텃골 남쪽에 있는 등성이, 구슬처럼 생겼음
  • 독보 : 텃골 앞쪽에 있는 보

득량면 송곡리 2구

박실

박곡마을은 고려말엽 공민왕 1352년 창녕 조씨가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보성군에서 3대 명당중의 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을의 터가 좋은 곳이라는 뜻에서 한자표기인 박(?)자와 송곡면의 곡(谷)자의 두자를 따서 박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특정지명

  • 가잿재 : 박곡에서 겸백면 수남리로 가는 고개
  • 대밭등 : 박실의 복판마을 큰 대나무 밭이 있었음
  • 동산주령 : 박곡 북쪽에 있는 마을, 동의 주령이 되는 산 밑이 됨
  • 삽정지 : 박실 앞에 있는 들
  • 원구개 : 마을 북쪽에 있는 고개

득량면 송곡리 3구

다전

다전마을은 원래 박곡 마을에 속하였으나 마을이 번창하여 1964년 행정구역을 분할하면서 다전이라 하였으나 옛부터 마을의 뒷산에 다년생 차나무가 많이 서식하므로 다전이라 했다 한다.

특정지명

  • 서당골 : 다전뒷산 골자기에 서당이 있었음

분지

분지 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조선시대 초기인 1410년경으로 추정되며 처음 본 마을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주로 박곡마을 부잣집에서 일을 거들며 살았다고 전해지며 그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들어왔던 사람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조선시대 말엽 박곡 마을 등에서 몇몇 세대가 이주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마을의 형태가 사람의 손모양인 오지 형이 하여 분지라 하였다 한다.

특정지명

  • 머구렁굴 : 분지와 중동 사이의 골자기
  • 선산등 : 머구렁굴 골자기에 있는 등성이로 해주최씨 선산이 있음

득량면 송곡리 4구

중흥동

중흥동 마을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 우리의 군대가 왜군과 대전하고자 포진한 중군의 진지가 이곳에 주둔한데서 중군동이라 불리워 졌으나 그후 언제부터인지 중흥동 또는 중동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중흥동은 1400년 후반에 하동정씨가 입주하여 부락을 형성 하였으며 그와 동일한 시기에 맹씨가 살았다 하나 현재는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마을 앞 농경지는 원래 천수답 이었으나 1937년 보성강 수력발전소가 건립되고 보성군 농지개량조합이 설립된 후 발전소에서 배출된 용수를 이용함으로서 경지면적의 상당한 부분이 수리안전답으로 개발되었다.

특정지명

  • 무작골 : 중흥동과 분지등 사이에 있는 골자기
  • 죽전골 : 중흥동 서쪽에 있는 골자기로 임진왜란때 왜구를 섬멸하기 위하여 시누대 를 심어 화살제작에 사용하였으며 현재도 산에 시누대가 있음
  • 초분골 : 중흥동 남쪽의 골자기, 사람이 죽으면 초분 해 두었다가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 윗등 : 중흥동 서쪽의 작은 등성이
  • 진보 : 진봇들 앞에 있는 들. 처음에는 짧았는데 근래에는 매우 길어져 이름에 들 어 맞았다 한다
  • 진보들 : 중흥동 앞에 있는 들

득량면 정흥 1구

동막동(東幕洞)

정흥리는 도촌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개산리, 동막리, 호음리, 고리, 회룡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정흥산 밑이 되므로 정흥리라 해서 득량면에 편입되었다.
동막동은 조선시대에 진주정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마을 지명은 정흥리의 동쪽에 위치한다하여 동막골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특정지명

  • 구정지 : 인정자 남쪽에 있는 들, 정자나무 아홉그루가 줄지어 서 있었음
  • 달판재 : 개산에서 동막동으로 가는 고개
  • 대판잇재 : 갓점재 동쪽에 있는 고개
  • 도롱골 : 백정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동그랗게 생겼음.
  • 동가맷등 : 동막동 동쪽에 있는 등성이
  • 밥주기논 : 호음동 동남쪽에 있는 논, 흉년에 한끼 밥과 바꿨다 함.
  • 불썬샘 : 도삼위에 있는 샘, 불공을 드릴때 이 샘물을 길어다 썼음.
  • 오셋재(갓점재) : 갓점에서 보성읍 봉산리의 오서로 가는 고개

개산(開山)

개산마을은 서기 1800년경 전주 이씨가 최초로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마을이름은 산을 개발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개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은 공인들이 많이 살았고 갓, 망건등의 수공예품 생산지였다고 한다.

특정지명

  • 망골 : 동 막동과 개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
  • 갓점(개산,갓쟁이) : 동막골 남쪽에 있는 마을, 패랭이를 만드는 점이 있음
  • 땅정이 : 동막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당집이 있었음.

고리(古里)

고리마을은 서기 1700년경에 하동 정씨가 최초로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지명은 가장 오래된 부락이라 하여 고리라고 하였다 한다.
옛날에는 이 마을에 유기그릇을 제작하는 도공들이 거주하였다고 하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고리(고리테,고리치,환치): 고리치 밑에 있는 마을
고리치(고릿재): 동막골에서 회천면 화죽리로 가는 고개
사그점골: 고리테 북쪽에 있는 골짜기, 사기점이 있었음

특정지명

  • 구실멧등 : 텃골 남쪽에 있는 등성이, 구슬처럼 생겼음
  • 독보 : 텃골 앞쪽에 있는 보

회룡동(回龍洞)

회룡동 마을은 보성 선씨의 장노께서 1788년 회룡고조의 명지를 찾아 이곳에 은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이름은 마을 뒷산의 지맥이 빙돌아 본산과 서로 대하는 회룡고조 형국으로 되어있어 회룡동이라고 한다고 한다.

특정지명

  • 바람세낏골 : 회룡동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바람이 센 곳임
  • 옥녀봉 : 회룡동 서남쪽에 있는 산, 옥녀단좌 형국이라 함,
  • 장구산 : 회룡동 서쪽에 있는 산, 장구 형국이라 함.
  • 베틀고개 : 동막동 동쪽에 있는 고개, 옥녀봉 밑이 되는데 베틀처럼 생겼다 함, 앞에 베짤 때 쓰는 기름종지처럼 생긴 바위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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